2012.6.25.

파도때문에 외도를 못가게되어 갑자기 가게된 포로수용소.

사실 이곳은 중3때 통영으로 졸업여행왔을때 들렀던 곳이었는데, 때마침 오늘은 6월25일.

'정말 뜻깊은 견학이로군'

 

 포로수용소..

62년전, 새벽4시. 북한군의 침략.

부산쪽으로 우리가 밀렸지만 '적군의 허리를 두동강낸다'의 맥아더장군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가 북한 압록강쪽까지

치고들어가 승리를 눈앞에 앞두었을때 중공군이 유입되면서 다시 밀리게되고 결국 휴전.

여기까지가 내가 간략히 알고있는 지식.

 약 20여군데를 관람하면서 느낀것은 '전쟁은 진짜 안된다....'라는 것이다.

아무도 싸우고 서로 죽이고싶지않은데 '전쟁'이라는 것 때문에 젊은 청년들이 투입되어 다치고 죽고...

전쟁은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윗사람들의 욕심일 뿐, 정작 싸우는 건 젊은 청년들.

전쟁이라는게 대체 뭔데.

왜 싸워야하는가.

 

 중3때도 와봤지만 약 10년후에 다시와서 보니 내가 성장한만큼 보고 느끼는 것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꼼꼼히 관람하면서 알게된 것.

첫번째. 거제도포로수용소는 6.25 한국전쟁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가 이기게되면서 이때 많이 발생한 포로(주로 북한군)들을 수용한 곳이다.

 

두번째. 이곳에서 포로들의 생활은 꽤나 괜찮은 수준이었다. (주로 옷 수선을 했다고 한다. 교육도 받고 잘 먹고 자고...개인시간도 있었음)

 세번째. 휴전얘기가 솔솔 나올때, 친공세력과 반공세력간의 갈등이 생겨난다.

친공포로들은 '해방동맹'이라는 비밀조직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시위와 폭동을 주도하고 약 100명의 반공포로들을 무참히 죽이기도 하였다.

또한 순찰하던 미국의 돗드준장을 납치, 협박하여 '콜슨각서'를 받아내는 등 북한의 지령을 수행하였다.

이때의 콜슨각서때문에 휴전협약때 남한쪽이 불리한점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의 의문점)

돗드준장은 자기의 목숨이 아까워 거짓문서에 서명을 한 것인가.

나는 지금 돗드준장이 잘못했다고 그 순간 자기가 죽을지언정 정의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만약 실제 그 순간의 돗드준장이었다면.. 나는 진짜 정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이 사건에대해 조사를 해보니 미군측이 여러 포로들과 돗드준장을 지켜내기위해 그렇게 하라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반공의식을 갖고 있던 포로들은 '대한반공 청년단'을 조직, 친공포로들에 대항하여 반투쟁운동을 벌였다.

사상과 이념의 갈등으로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서로를 죽이고 폭동이 일어났다.

결국은 반공포로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고 친공포로는 북으로 송환되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마음이 다 망가져버린 소수의 포로들은 북도, 남도 아닌 제3국으로 떠나기도하였다.

 

여기서 최인훈의 '광장'이라는 한국전쟁 소설이 생각났다.

거기서 주인공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북으로 갈꺼냐, 남으로 갈꺼냐의 질문에 제3국... 인도로 간다고 하고

인도로 향하는 배에서 자살한다..

광장이라는 소설이 이야기하고있는 바가 가슴 절절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이래서 체험학습이 중요하군.

포로들의 식사시간. 너무 쓸쓸해보여 옆에앉아 같이 사진 한장.

아...웃으면 안되는데..

 

포로수용소는 전쟁세대가 아닌 학생들,젊은사람들이 진지하게 많이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쟁과는 너무도 먼 편리한 스마트세상에 살고있지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이러한 현장체험을 통해 꼭 알아야하며 마음에 새겨야할 것이다.

 

Posted by 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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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니 2012.07.04 16:3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유치원생같아 노란 꼬까옷 입은 ^^